지옥의 묵시록 - 등장 인물들은 왜 미쳤나?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산다. 스스로도 자아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아 정체성을 지키게 해 주는건 사회의 제약이다. 사회가 어떻게 행동하라는 제약이 대강의 테두리가 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든다. 하지만 그 사회의 제약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내가 생각한 지옥의 묵시록에서 등장인물들이 미쳐가는건, 그들이 탈 미국화 되고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베트남화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베트남사회에 속하지 않으므로. 미국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글 속에서 다른 어떠한 법칙이나 상식에 의지할 수 없이, 원초적인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컬쳐쇼크가 개인에겐 견딜 수 없어서 등장인물들은 전부 미쳐간다. 

물론 윤리적인 갈등도 있다. 베트콩들은 민간인과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에, 민간인 인 척 하고 베트콩들이 테러를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들은 민간인을 만나면 경계태세에 들어가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쏴버린다. 물론 그렇게 쏴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들은 총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사 소통 방식을 모른다. 

주인공부터 맛이 가 있고,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만나는 인간들도 죄다 어딘가 맛이 가 있다. (강을 따라 올라가는게 뭔가의 메타포 같다) 서핑에 미친 부대, 사령관이 없는 부대, 뭔 일을 당했는지 실성해 있는 플레이 메이트들, 과거에 집착하는 프랑스인들. 

그래서 결국 커츠 대령을 만나는데 (주인공의 임무는 커츠 대령의 제거) 커츠 대령은 그 곳에서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신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는 베트남인들과 공존하는 법을 찾은 걸까? 나는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부대는 죄다 죽어서 매달려 있거나 주검을매장도 안하고 방치한다. 아마 그가 발견한 방법을 따르기 전에, 부대원들은 죄다 미쳐 버리지 않았나 싶다. 그가 읽었던 책 중에 황금가지가 있다. 그 책은 원시 부족들의 수목 숭배나, 부족장의 정치 방식과 같은 원시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커츠 대령은 그 곳에서 원시 사회의 부족장으로 군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와서 자신을 죽여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부족장을 그만 둘 수 없었고, 부족장으로써의 자리를 이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황금가지의 내용) 결국 주인공인 윌라드가 커츠를 죽이고, 베트남인들은 그를 부족장으로 맞이하려 하지만 윌라드는 타고 온 보트를 타고 떠나버린다.

여러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전쟁의 광기를 잘 표현했다고 하는데, 왜 미쳐가는지 설명을 굳이 달지 않았다. 아마 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이긴 하지만, 전쟁이랑 별로 상관이 없다. 왜 싸워야 하는지, 베트남 전쟁의 정당성의 여부, 윤리적인 갈등(약간은 나오지만)과 같은 전쟁영화의 테마가 일절없다. 전쟁이라는 환경이 개인과, 군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하도록 무서운 영화다. 

by TAKUO | 2009/11/01 10:41 | 취미 | 트랙백 | 덧글(0)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은 정장

언젠가 얼굴에 관록이 쌓이면 도전해 보고 싶은 정장이 있다. 





바로 서스펜더 3버튼 3피스 옛날 정장! (사진의 사람은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많은 정장 중에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풍성한 정장을 언젠간 입어보고 싶다. (흰색 입으면 켄터키 할아버지 같으려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래 정장은 이런 모양이었는데, 어떤 의상 디자이너가 현대의 슬림 정장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현재의 정장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말이 나와서 그런건데, 남자 옷을 루즈하게 입는 방법을 모르겠다. 내가 아는 방법이라곤 1. 힙합 풍 2. 가죽자켓이나 야구잠바를 루즈하게 입고 바지를 약간 타이트하게 (80년대 스타일) 3.자켓(블레이저)를 타이트 하게 입고 바지를 루즈하게(테이퍼드)입는 채플린 스타일 정도인데, 누구 루즈하게 입는 스타일을 아시는 분은 댓글 바람.

by TAKUO | 2009/10/27 20:17 | 취미 | 트랙백 | 덧글(0)

전통을 보는 시각

우리 집안은 이북에서 내려온 혈통이라 제사를 지낼 때, 제수 음식이 다른 곳과는 좀 많이 다르다. 먼저, 제사상에 생선이 드물고(어느 지역에서는 문어를 올려 놓는다고 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제수 음식이 이북 지방에서 구하기 쉬운 음식이며, 전반적으로간이 덜 되어 싱겁다. 그 외에 술은 정종이나 청주가 아닌 소주를 사용하고, 위패가 아닌 영정사진을 두고 제사상 아래에 작은 상을 하나 두고 그 위에 위치한 향로의 향을 태우고 제사를 치른다. 제사가 끝난 다음은 종이에 조금씩 잘라낸 제수 음식을 싸서 밖에 둔다. (물론 나중엔 버린다)

우리 집안은 종가집이나, 유명한 성씨가 아니라 제사 형식이 좀 임시변통적인 구석이 있다. 병풍도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고, 지적하라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서적이나 다른 정보를 통해서 정식 제사 진행법을 배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짜피, 정식 제사 지내는 법도 안동김씨 종가나 어느 다른 종가집에서 지내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삿상에 남도 김치를 올려 놓는게 올바르다면, 그게 남도 제사법이지 우리 집안 제사법인가? 우리 가문은 우리 가문만의 제사법이 있고, 그 제사법이 전승을 통해서 전해지고, 또 환경에 따라 약간씩 바뀐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올바른 전통의 전달방식이다. 

전통을 중시한다는 것은 좋지만 너무 거기에 얶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스스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세인 남의 전통이 진짜고 불변하는 것 마냥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러 전통이 여러 다양성으로 연결되는 문화를 가지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문화가 물을 건너오면 현지 사정에 맞추어 변색되고, 그것이 다시 독자적인 문화가 되기 마련이다. 마치 남미의 고추가 임진왜란을 통해 한국에 건너와 이제는 전통음식이 되었듯이, 네덜란드 선교사의 복장이 일본에 건너가 학생복이 되고 중국의 쑨원이 그 복장을 중국에 들여와 인민복을 만들어 이제는 포멀한 의상이 되었듯이. 


by TAKUO | 2009/10/27 16:48 | 씨앗 | 트랙백 | 덧글(4)

태국에서 업어온 고양이 인형과 석고상 뽑기

태국 여행중 우연히 들어간 쇼핑 센터 지하에 있던 돌하우스와 도자기 인형이 전시된 가게에서(미야자키 하야오를 닮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업어온 괭이들. 할아버지 왈, 이 가게는 일반 손님을 상대로 파는 가게가 아니라, 공방에서 만드는 제품들을 바이어들이 구경하고 주문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는 곳이라 한다.(만개 단위만 수주 받는단다)


아비시니언

페르시안


울 동네 홈플러스에서 팔고 있는 일본산 뽑기.(가샤퐁) 갖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발견해서 지나칠 때 마다 몇 개씩 뽑고 있다.



몰리에르

죠르쥬

by TAKUO | 2009/09/26 17:31 | 취미 | 트랙백 | 덧글(0)

안톤 체호프와 어장관리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중 한 명인 안톤 체호프 선생님의 소설중에는 '정조'라는 단편이 있다. 선생님의 작품이 다 그렇듯이, 화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절제하고, 행동 중심으로 이루어진 표현을 중심으로 쓰여진 글이기에, 그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낀 것은 여성의 심리다. 남편을 둔 몸이라서 바람을 피우진 않지만, 그녀에게 찾아와 열렬히 구애를 하는 청년에게 절대로 노라고 말도 하지 않고, 부를때마다 나오지만, 예스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그녀. 청년은 차라리 날 두번다시 보지 않겠다고 하면 차라리 손털고 깨끗이 물러서겠다고 하는데, 잔인하게 노라고 하지 않고 자신에게 반한 청년을 발치에 두고 가학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그녀가 상당히 소름끼쳤다.

체호프 시대때도 그런데, 요즘은 안 그러랴? 중국 유학 가있었을때, 한 사내가 일본 여성에게 구애를 하는데 그 행동거지가 지극 정성이었다. 어디 동생 옥바라지 하려고 옥장한테 가서 알랑방귀 뀌는 것 처럼 시도때도 없이 비벼대는데, 구경하는 나와 일본인 친구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것이 있었다. 결국은 둘은 사귀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거리 차이를 넘기지 못하고 깨지고 말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것은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낙태니 뭐니 써서 실컷 까이는 것 말고, 그런 구애의 관심은 설령 받아줄 이유가 없어도 두고 보기에 썩 좋은 것이다. 여신의 제단에 꽃을 더 가져와라! 남자든 여자든 자존심은 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존심과 타인보다 우월하길 원하는 욕구가 바로 요런 사귀지도 않을꺼면서 지극 정성은 바치게 하는 어장관리를 불러온다.

이런 경향은 외모자산을 가진 여성들 사이엔 굉장히 심하지만, 외모자산이 부족하다고 해도 요구가 덜 하지는 않다. 한국여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면서 먼저 고백은 안하고 고백을 하게 만든다니의 이야긴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일단 남자가 잘 해주고, 여자는 서비스 받는 입장이라는건 우주의 법칙이고, 그 후에 외모자산으로 감가상각을 하던 신자유주의로 FTA를 맺건 한단 말인가. 

자원의 배분이 불균등한 규칙은 받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과 관심까지 불균등한 법칙은 받아들일 수 없다. 어장관리 이야기하다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데, 가난하게 살 수는 있어도 외롭게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외모자산이나, 여타 노력으론 바꾸기 어려운 것들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고 고통스럽게 산다면, 경제구조보다 그런 문화 구조를 뜯어 찢어 발기고 싶다. 내가 알아낸건데, 외로우면 토끼가 죽는게 아니라 사람이 죽더라. 

by TAKUO | 2009/09/17 21:17 | 주간 룸펜평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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